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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7시. 인천 남동구 수산동 박두성 선생 묘소 인근에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해당 표지판은 지난 9월 인천일보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 기획 <。으로 읽는 빛>에서 지적된 이후 개선됐다. /곽안나 기자 23일 아침 7시. 인천지하철 2호선 남동구청역에서 내려 약 20분쯤 걸었을까. 뜨겁던 여름, 선생의 묘소를 찾기 위해 방문했던 수산동 경신마을 초입이 눈에 들어왔다. 갈라지고 빛 바래 알아보기 힘들었던 '한글。자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 묘 150m'라는 안내표지판은 다행히 <。으로 읽는 빛> 보도 이후 깨끗하게 정비된 모습이었다. 물론, 이 표지판도 이날 오후부터는 폐기될 처지겠지만. 예전이라면 산길을 따라 곧장 올라갈 수 있었던 길은 오늘도 사유지 등에서 쳐놓은 각종 휀스 등으로 막혀있었다. 저번 방문때처럼 인근 수목원의 배려로 수목원 내부를 통해 묘소에 닿을 수 있었다. ▶ 관련기사 : 인천일보 9월8일자 [。으로 읽는 빛] 4-3. ①방치된 송암 선생 묘소…훈맹정음 100주년 무색, ②사유지에 갇히고 수풀에 덮이고…막혀버린 '기억의 길' [。으로 읽는 빛] 4-3. ①방치된 송암 선생 묘소…훈맹정음 100주년 무색https://v.daum.net [。으로 읽는 빛] 4-3. 모바일 손오공게임추천 ②사유지에 갇히고 수풀에 덮이고…막혀버린 '기억의 길'https://v.daum.net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적 드문 동네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흰 지팡이를 짚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길은 고된 여정이었음이 분명했지만, 오늘날 시각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선생이 수산동을 떠나는 마지막날을 함께하기 위해 지역 곳곳에서 찾아오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많은 시각장애분들이 오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고향 땅 교동으로 가는 길을 많은 분들이 배웅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실거라 믿습니다." 기독교인이었던 선생의 이장 절차는 유가족의 대표 기도로 시작됐다. 묘소 인근으로 들어온 굴착기의 시동이 켜지자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봉분을 둘러싼 비석들 주변의 흙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남의 불행 건지려고 자기 행복 버리신 임. 한숨을 돌이켜서 임마다 노랫소리. 그 공덕 잊으리까 영원한 칭송 받으소서.'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선생 서거 3주기를 맞아 노산 이은상 선생이 써내려간 추모시가 적힌 비석이었다 슬롯머신 . 그를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적힌 비석이 천천히 땅에서 들려 올려졌고, 한 세기를 건너 매 순간 그의 희생을 삶에서 몸소 체험하는 시각장애인들이 그 순간을 지켰다. 이후 묘비와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2002년 4월 문화인물 기념비까지 차례로 옮겨졌다. 이날 현장을 찾은 노창우 인천시시각장애인연합회장은 "그동안 우리가 많이 올 수가 없어서 (선생님께서) 많이 외롭지 않았을까 싶다"며 "신경을 못 써드려 죄송하다. 지금이라도 더 많이 뵐 수 있는 곳으로 모실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김용기 대한안마사협회 인천지부 회장은 "옛날에는 1년에 한 번씩 꼭 와서 행사했던 곳인데 마음이 뭉클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와서 죄송스럽다"며 "접근하기가 불편하지만 더 잘 모셨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둥글게 쌓아 올린 봉분의 윗부분이 제거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시각장애인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의 옆을 묵묵히 지키며 지원한 아내 김경내 여사의 관이었다. 여사는 박두성 선생 서거 10년 후 소천했다. 선생의 장손인 박현재 씨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셨다. 그리고 10년간 할머니가 지극정성으로 병간호하셨다"며 "침술을 익히시고 할아버지와 많은 이들을 도우셨다 모바일야마토무료게임 . 참으로 지혜로우셨던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어, 이거 안경 같은데요. 선생님이 쓰셨던 것 같습니다." 63년 만에 열린 박두성 선생의 묘소에서는 생전 그가 쓰던 것으로 보이는 안경도 모습을 드러냈다. 긴 세월 흙 속에 묻혀 있던 작은 유품이 모습을 드러내자 유가족들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흔적과 다시 마주한 순간, 현장에는 반가움과 먹먹함이 함께 번졌다. "안경이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아마 할머니가 할아버지 쓰시라고 넣으셨나 봅니다." 손자 박현재씨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오래전 떠난 이를 다시 만난 듯, 손바닥만 한 유품 하나가 묻혀 있던 시간을 단숨에 현재로 끌어올렸다. 박두성 선생과 김경내 여사는 손자가 새로 준비한 관에 각각 옮겨졌다. 관에는 빨간 십자가가 크게 그려진 흰색 천이 덮였다. "당신이 오늘 증인이야." 박현재씨가 끝까지 자리를 지킨 노창우 회장의 손을 꼭 쥐며 고맙다는 듯 웃었다. "시각장애인을 사랑하셨고 그렇게 (훈맹정음을) 만드셨잖아요. 자주 와보지 못해 마음이 그랬는데 이제는 언제든 뵐 수 있을 거 같아요." 노 회장이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며 화답했다. 63년 동안 박두성 선생이 잠들어 있던 수산동 묘소는 이날 마지막 모습을 남겼다. 하루 뒤 선생은 자신이 태어난 강화 교동으로 돌아간다. 날 오후부터는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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